45년 장인의 한복 예찬가
  신라 패션 전통한복 

138번째 이야기 / 2023.11.30

마지막으로 한복을 입어본 때가 기억이 나는지? 아마도 높은 확률로 본인이나 가족의 결혼식, 혹은 민속촌이나 고궁·한옥 마을 같은 곳을 갈 때 이벤트성으로 대여해서 입어본 때일 것이다. 한복은 의류임에도 언젠가부터 생활이 아닌 체험의 영역이 되었다.

하지만 한복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촘촘히 빚어낸 산물이다. 고요하면서도 웅장한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으며, 선조들의 삶과 정서가 깃들어 있다. 가치 환산 불가한 온전히 지켜내야 할 전통인 것이다.

천안시 대흥동 명동거리에 위치한 <신라 패션 전통한복>의 박승자 대표는 무려 45년 동안 한복을 만들어온 장인으로 묵묵히 그 자리에서 한복의 얼을 이어가고 있다.

한복 예찬의 시작

어릴 적 바느질하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그 단정하고 정갈한 아름다움을 동경했다. 그렇게 한복 제작에 흥미를 느낀 박대표는 언젠가 자신도 어머니처럼 한복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입히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학생 때는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워서 가끔 도와드리는 정도였죠. 성인이 되고 1978년도 청주에서 ‘신라 주단’이라는 곳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한복을 배우게 됐어요. 원단에 따라 알맞은 바느질도 다 다릅니다. 수많은 바느질 종류부터 두루마기, 원삼, 수의 등 다양한 한복을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하나하나 전부 배우면서 제 실력을 쌓았어요. 일거리도 많은데 배울 건 하늘만큼 쌓여 있으니 얼마나 바빴겠어요. 손이 퉁퉁 부을 정도로 고됐지만 그때의 전 혈기왕성했고 그저 한복을 만드는 게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매일매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혼 후 천안으로 보금자리를 새로 옮기고, 1987년 3월 대흥동 명동거리에 <신라 패션 전통한복>을 개업하게 되었다. 당시 명동거리는 최전성기 번화가로 많은 고객들이 찾아와서 한복 제작 의뢰를 하여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매장 운영과 동시에 ‘우리 옷 협회’ 주최로 한복 패션쇼에도 여러 차례 참여하고, 대사관 부인들에게 한복을 선물하는 국가 이벤트에도 참여했다. 연예인들도 섭외하여 화보 촬영과 달력 제작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며 커리어를 쌓아갔다.

선비의 정신으로 만드는 장인의 한복

박승자 대표의 한복은 일대일 고객 맞춤 제작이 원칙이다. 퀄리티 유지를 위해 요즘 주로 볼 수 있는 판매 방식인 대여도 하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대여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질적인 면에서 여러모로 타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신은 비록 큰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일 년에 단 몇 벌의 한복을 만들더라도 한복으로는 그런 타협을 할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정말 대쪽같은 장인정신이 아닐 수 없다.

고객과 상담을 통해 원하는 색감 및 원단을 선택하고, 체형에 맞게 디자인하며, 재단부터 바느질까지 100%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먼 곳에서도 <신라 패션 전통한복>을 종종 찾아오기도 한다.

“강원도에서 사는 부부이신데 세트로 모시 외출복을 주문하셨어요. 모시는 특유의 시원한 느낌 때문에 여름에 사랑받는 원단이지만 재질이 빳빳해서 다루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풀을 먹여 다림질하고 올을 맞춰 바느질도 해야 하는데 이걸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남편분께선 처음에는 굳이 먼 천안까지 와서 옷을 맞추고 싶다는 아내분의 말씀에 의아해하셨다고 해요. 서울의 화려하고 큰 매장도 아닌데 왜 여기까지 와야 되는지 이해가 안돼서 불편하셨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딱 제가 만든 모시옷을 직접 입어보시곤 세상에, 너무 시원하고 편안하다며 만족하시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뿌듯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고객은 또 있다. 자녀가 결혼을 하여 한복을 맞춰드렸는데 평생 들을 칭찬은 그날 결혼식에서 다 들었다며 고맙다고 떡 한 말을 주고 가신 분도 있고, ‘능수버들 아가씨 선발대회’에 입을 한복을 제작해 준 고객은 진으로 선정됐다며 감사의 뜻으로 몸집만 한 2단 케이크를 가져온 적도 있다. 온 정성을 쏟아 만든 한복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런 감사한 분들 덕분에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감동과 아름다움이 춤추는 '녹의'의 순간들

모든 작품이 제몸과 같이 소중하지만 그중에서도 박대표가 가장 아끼는 본인의 작품은 며느리와 딸이 결혼식때 입었던 녹의(綠衣)다.

“제가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한복을 지어주며 늘 생각해오던 것이, 내 자식이 결혼할 때 입을 한복은 꼭 내 손으로 만들어 입히는 것이 소망이었어요. 녹의홍상(초록 저고리 다홍치마)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새댁을 상징하는 의복이에요. 시대가 변하면서 신랑 신부 결혼식 한복은 연한 파스텔톤이 유행하고 있잖아요. 이 특유의 쨍한 색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쩌나 많이 걱정했지만, 오히려 흔하지 않아 좋다며 흔쾌히 입어줘서 고맙고 이 일을 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했어요.”

한복 장인이 만든 신부의 녹색 저고리는 진부한 느낌 없이 선명하고 고급스러운 빛을 자아냈다. 동정부터 소맷단까지 모든 부분이 정갈하고 단아하게 선을 이뤄 태 자체가 우아하고 아름답다.

이 저고리에는 한 가지 사연이 더 있는데, 1년 전 매장에서 불이 나서 저고리 19점이 손상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이 저고리는 다행히도 직접적인 화상을 입지 않았지만 그을음과 탄내가 배인 건 어쩔 수 없었다. 속상한 마음에 처음에는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며느리가 절대로 버리지 말아 달라며, 어머니가 처음으로 정성껏 만들어주신 건데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간직할 거라고 말한 것에 울컥해 생각을 바꾸고 보완하여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절대 잃을 수 없는 한복의 가치

박승자 대표의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오로지 '전통 한복의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다. 평생을 몸담은 사랑하는 한복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번화가였던 명동거리가 한산해져 가는 것처럼 한복을 찾는 사람도 점차 줄어드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자연스레 수입 면에서도 타격이 있어 차선책으로 양장도 같이 취급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한복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을 것이다.

“전 제가 만들 때나 가르칠 때나 늘 옷을 만들기 전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번 정갈하게 몸과 정신을 정돈하고 바느질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실제로 항상 실천하고 있어요. 자랑스런 우리 전통 한복이지 않습니까. 너무 심하게 변형된 대여용 한복이나 의복 고증이 잘 되지않은 사극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많아요. 하지만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부분이고 한복의 생활화를 위해선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홍보에 어려움을 겪는 박 대표는 소개나 입소문을 통해 한복 제작을 하고 있다. 단지 원도심의 매장 홍보를 맡은 에디터 이전에 한 사람의 국민이자 소비자로서 45년 장인이 지닌 이 멋진 실력을 알리기 위한 창구가 부족하다는 점이 매우 안타까웠다.
부디 보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 방문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해 짓는 아름다운 우리 고유 옷도 감상하고 문화를 향유하며 평소 잊고 있던 전통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되뇌여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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