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와 시, 그리고 커피
책방 악어새 

136번째 이야기 / 2023.11.30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오랜 격언이 있다. 새로운 세상과 통하는 수많은 길을 모아놓은 서점은 그 자체로 좋은 여행지가 된다.

그중 독립서점은 즉흥 배낭여행에 가깝다. 여행 중 예상치 못한 낯선 상황이 더 인상 깊듯이 비록 베스트셀러는 아닐지라도 책방지기가 엄선한 다양한 서적은 또 다른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자아 탐색이 삶의 중요 과제로 대두되는 요즘 개성 가득한 독립책방을 찾는 고정층도 점점 늘고 있다.
그리고 여기, 그중에서도 조금 더 장르 특화된 독자 적인 노선을 택한 곳이 있다.

천안 원도심 문화동 버들로22에 자리잡은 <책방 악어새>는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동화작가 성욱현 대표와 『친애하는 서로에게』라는 독립출판물을 출간한 시인 조민주 대표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소담하고 아늑한 책방 내부 한편에는 알록달록한 그림책들이 책장에 꽃밭처럼 피어있고 다른 한편에는 다양한 감성을 지닌 시집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다독인다. 동화와 시. 참신한 조합인 두 장르가 공존하는 이 곳에서 향기로운 차와 함께하는 시간은 더없이 풍요롭고 편안했다.

이야기가 숨 쉬는 악어새의 둥지

책방에 들어서면 간판에서부터 테이블, 메뉴판까지 이곳저곳에서 귀여운 캐릭터가 눈에 띈다. 악어의 머리와 새의 몸을 한 마스코트, ‘악악이’다.

글과 그림을 좋아해 책이 있는 곳이면 뽀르르 나타나 기웃거린다. 수영을 잘하지만 악어도 아니고, 멀리 날 수 있지만 새도 아니다. 독특한 모습 때문에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고 외면받던 악악이는 차별과 편견 없이 마음껏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꿈꾸었고, 마침내 이곳 천안 원도심 문화동에서 둥지를 틀게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어우려져 사는 세상을 바라는 두 명의 작가가 각자의 세계를 넘어 조우한 곳이 바로 <책방 악어새>이다.


두 대표 모두 고향은 다르지만 천안 단국대학교를 다니며 이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성욱현 대표가 교보문고 대산문화창작기금 공모전에 당선되며 생긴 상금을 뜻있게 사용하고자 알아보던 중 멘토인 <일상서재> 이의용 대표의 추천으로 ‘버들로22’ 건물 1층에 카페 겸 책방을 열게 되었다.

“특히 원도심 근처에는 아이들과 함께 차분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문화 공간이 귀하다고 생각해요. 가족분들이 멀리 가지 않고 같이 와서 책도 읽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곳에서는 단순히 책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각종 문화 체험 프로그램과 더불어 문학 창작 모임도 운영중이다. 이를 통해 작가와 독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악어새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

“저희가 항상 준비해두고 있는 방명록이 있어요. 여행지에서 오셨거나 혹은 일상에서 어떤 고민을 지니고 오신 분들이 이따금 길게 소감을 작성해주시는데 그걸 보면 정말 감사하고 소중해요. 공들여 가꾼 이곳이 누군가의 삶에 유의미하게 남았구나-라는 보람이 들거든요.
자신만의 버전으로 악악이를 그려주시는 분들도 있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시는 분들도 있고 하나하나 다 너무 사랑스러워요.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작은 장이 된 것 같아 볼때마다 참 행복해집니다.”

물론 모두가 이런 가치에 주목하는 건 아닐 것이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 릴스, 틱톡같이 1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영상이 대유행하고 있는 시대이다. 반면 독서를 하는 비중은 날로 줄어드는 현 세태 속에서도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방지기이자 창작자로서 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저도 사실 영상을 보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훅 가 있는 걸 느껴요. 빠른 시간 안에 정말 무수한 자극과 정보가 스쳐 지나가죠.
인생을 살아가는게 멀리 걸어가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건 한계치로 빠르게 달리는 취미인 것 같아요. 너무 빠른 속도는 숨이 차기 마련이고 주변 경관도 볼 수 없잖아요. 책은 아무래도 그보단 훨씬 느린 호흡으로 느긋하게 즐길 수 있어요.
내가 주로 보는 것이 삶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책은 천천히 본인의 삶을 돌아보고 또 나뿐만 아닌 주변도 둘러볼 수 있는 인내심과 여유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문화 현상이기 때문에 나쁘다 좋다, 이 문제가 아니고 삶은 항상 밸런스가 중요하잖아요. 뭐든지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천천히 가야 될 때가 있죠. 나에게 온전히 차분하게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책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악어새의 꿈

성욱현 대표는 책방을 운영할수록 공간 자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 더 중요함을 느낀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책을 추천받고 싶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책방은 잘될 수밖에 없다고. 일찌감치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 삶의 주관이 뚜렷한 두 청춘이 추천해주는 책도 궁금해졌다.

“키티 크라우더 작가님의 『메두사 엄마』라는 그림책입니다. 간단히 내용을 말씀드리자면 저희가 알고 있는 무시무시한 메두사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워가면서 세상과 대립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지만 결국엔 아이와 교감하면서 세상과 융합되는 그런 이야기에요.
요즘 시대는 스스로의 개성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그림 동화책이라 생각합니다.”

“한정원 작가님의 『사랑하는 소년이 얼음 밑에 살아서』라는 시집이에요. 소년과 소녀가 대화하는 극본 형식으로 구성이 되어있어서 시가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도 보다 쉽게 시의 언어를 보고 감동받으실 수 있을 것 같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각자 분야의 추천 책을 설명하는 태도가 사뭇 진지하고 열정적이다이처럼 책을 읽는 것이 삶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는 두 대표의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주 잘 돼서 거창하게 유명해지기보다는 지금처럼 꾸준히 단골 고객님들이 오시고 책에 대해 관심 가져 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걸로도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그림동화책이나 시를 대중적으로 모두 쉽게 접하진 않잖아요. 지나가다 한 번 들러보시고 이전에 몰랐던 매력을 느껴주신다면 더할나위 없는 기쁨이 될 거예요.

무엇보다 저희 책방을 오시는 분들이 모두 평화롭고 다정한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책방의 중요 주제가 다양한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지향하는 만큼 어떤 분도 반갑게 맞을 준비가 되어있으니 부디 언제든 편안한 마음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책방 악어새>는 밝고 건강한 문학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혹여 현실이 가끔 버겁고 지쳐 내 마음에 그림자가 생길 때 따스한 볕을 쬐고 싶다면 양지바른 이곳에 방문하여 아름다운 동화와 시와 맛있는 커피와 함께 힐링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겠다.

*인스타그램 @crocodilebird.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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